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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수어Review/Books 2023. 9. 25. 20:15SMALL
제대로 이해했다고 하기보단 어느정도는 알겠다고 말하기
이미화 작가님의 수어라는 책을 읽어보았다. 다른 문화에 대한 정보가 많아지고 자주 접할수록 그 문화를 이해했다는 착각을 하곤하는데 이 "수어"라는 책을 통해서 아는 것과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에 대해 고민이 많아졌다. 장애인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에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이해하는 척, 포옹하는 척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이를 단순히 다른 지역, 다른 나라의 문화들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문화로만 이해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생각이 들게 되었다. 어떤 사회나 단체는 그 자체의 존재만으로 이해하면 되는 것이지 내가 이해해주는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수어
이 책은 작가가 수어를 배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수어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손으로 만드는 언어이다. 첫 수업때 자신의 이름을 표현하는 방법부터 배우는데 이 장면에서부터 수어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 자신을 나타내는 고유명사인 이름은 지극히 청음 중심적이다. 간단히 세 글자(또는 그보다 적거나 많음)로 이루어진 이름을 삼음절만 “말”하면 되는데 수어로 그 자음과 모음을 표기하는 것은 의사소통을 하는 “언어”로써 비효율적이다. 그래서 농사회에서는 “얼굴이름(수어이름)”을 사용한다고 한다. 얼굴이름은 남성(엄지손가락)과 여성(새끼손가락)을 지칭하는 손가락 표현과 얼굴의 특징으로 오랜 관계를 맺은 농인에게 선물받는 것인데 얼굴의 특징으로 그 상대를 표현하는 것이다. 여기서 또 놀랐던 점은 일반적으로는 상대의 외모 특징을 발견하고 그걸 표현하는 게 무례하다 생각하는데 여러 감각 중 청각이 없는(없다는 말 대신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음….ㅠㅠ) 사회에서는 중요한 표현 방법이 되는 것이다.
시각 중심의 의사소통을 이루는 농인 사회에서는 얼굴이름과 마찬가지로 표정으로 전하는 감정 표현도 중요한 부분이다. 수어를 사용할 때, 단순히 손으로만 그 언어(동작)를 표현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건 솔직한 감정이 느껴지는 표정이다. 농인은 대화의 매순간 마다 표정으로 온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수어와 문화
한국 수어는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언어로 인정받게 되었다(누가 누굴 인정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청인 입장에서 단순히 한국어의 언어 체계를 그대로 수어로 옮겨서 생각하기 쉽겠지만 한국 수어는 그 나름의 체계를 가지고 있다. 시각적으로(어쩌면 다른 문화에서보다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이 제한된) 최대한 다양한 표현으로 하려면 표현이 늘어나고 체계가 생기기되며 더 많은 차원을 사용하게 된다. 언어를 글로 표현할 때와 말로 할 때 표현의 깊이(차원)가 다른 것처럼 수어도 보이는 표현의 범위를 확장시켜 공간(3차원)으로 풍부한 표현을 가능하게 한다. 또 수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문화속에 들어가 직접 그들과 대화하며 겪어봐야 한다. 이 부분은 우리가 백날 영어문법을 공부해봐야 실전에서 말 한마디 못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어떤 언어를 언어 자체로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속에서 느껴봐야 하는 것이다.
안다는 것
어떤 사람이 자주 사용하는 단어는 그 사람이 최근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럼 어떤 문화에서 많이 사용하는 단어는 그 문화에서 많이 공유되는 단어일 것이다. 특히 단어로 존재하는 관념은 우선 존재해야 생각으로 실체로 살아남을 수 있다. 단어 자체가 없어지면 그것을 떠올리며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책에서 수어의 단어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에서 ‘결혼하다’라는 표현이 남자(엄지손가락)와 여자(새끼손가락)을 맞댄 동작으로 표현한다. 엄지손가락과 엄지손가락을 맞대거나 새끼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을 맞대는 것으로 그 단어를 표현하는 수어는 없다고 한다. 성형미인, 필러 시술을 표현하는 단어는 있지만 동성간의 결혼을 표현하는 단어는 없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나는 “일반적으로” 차별받는다고 생각했던 농인사회에서 또 다른 차별이 일어나는 것 같다고 느껴졌다. 진정한 차별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에서 오는 차별은 진짜 차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 지금 차별이라고 느끼는 부분이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대로 차별이라고 느껴질지 등 많은 의문점이 생겼다.
선천적, 후천적
장애가 없는 사람들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보면 불쌍함(혹은 안쓰러움)을 느끼곤 한다. 일상적으로 누릴 수 있는 것들에 제한이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공공장소의 시설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인지 정확한 이유를 알 순 없지만 대부분은 불편한 감정을 먼저 느끼곤 한다. 대학교 특강 중 우연한 호기심으로 듣게 된 ‘장애의 이해’라는 수업에서 장애인을 지칭하는 용어에 있는 차별(따로 단어로 분류된 것 자체만으로도 차별이 된다고 한다.)이나 장애학교라는 존재 자체가 주는 분리에 대한 차별이 나도 모르게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회에서는 “배려”라는 이름으로 “차별”을 하고 있었구나라는 것을 알게된 좋은 시간이었다. 그때 수업을 해주시는 선생님도 장애가 있는 분이었는데(수업 마지막에 밝히셨는데 그 말을 하기 전까진 아무도 그 선생님이 장애인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 분이 해주신 말씀 중에 내 편견을 가장 크게 깨주었던 말이 있다. 바로 “장애를 가진 사람 중 선천적인 장애보다 후천적으로 장애가 생긴 사람들의 비율이 훨씬 많습니다. 그들을 불쌍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장애라는 건 언제나 누구에게나 어느 순간에 찾아올 수 있습니다.”라는 말이었다. 이 말을 들은 순간 장애라는 것은 어떤 대단하거나 특별한 일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누군가에게나 찾아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들을 일상에서 “배려(장애 시설 등)”라는 걸로 분리시는 게 맞는 것인가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했었다. 또 유튜버 원샷한솔(이름이 정확히 맞는지는 기억 안남..)님의 영상에 한참 빠졌던 적이 있었는데 그 분도 후천적으로 장애가 생기신 분이라 비장애인 시절에 생활하던 사회와 장애인이 되고난 이후 느껴지는 사회에 대한 불편함을 솔직히 말해주곤 했다. 대학 특강을 듣지 않은 상태에서 한솔님의 유튜브 동영상들을 봤다면 이런 다양한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비슷한 깨달음(편견이 깨지는 것 같은 느낌)을 얻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 부분은 모든 청각장애인이 듣는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선천적으로 장애를 갖고 태어난 사람은 소리가 없는 그 생활이 당연한 일상이다. 만약 지금 내 시력이 엄청 나빠서 좋게 해준다고 수술을 해주었는데, 모든 장소에 기어다니는 세균들을 현미경으로 보는 것처럼 자세히 보게 된다면 정말 끔직할 것이다.
안다는 것과 이해한다는 것
처음 수어라는 책을 읽을 땐, 단순히 수어가 어떤 것이고 청각 장애인들이 겪는 고통은 어떤 것이고 .. 등 이런 종류의 새로운 “지식”이 생겨나겠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책에서 이런 내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더 집중되었던 부분은 “수어에 대한 인식”을 다루는 부분이었다. 수어에 대한 지식을 얻고 수어를 이해해야지 했던 생각은 너무 무지했고 글로써 문화를 이해하려했던 오만함을 가지고 있었다. 적어도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려면 그 문화가 존재하는 것을 알아야하고 내가 직접 경험해보지 않는 이상 그 자체로 존중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 당사자가 되어서 그 문화속에 살며 그 사회구성원으로서 존재하지 않는 한 제대로 이해했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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